“대국민 사기극” 규탄 잇달아…靑 ‘슬쩍’ 비켜

정부가 사실상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을 백지화 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면서 한나라당 내 영남권 의원들과 지자체장 등을 중심으로 정부를 향한 여권 내부의 불만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그간 “설마 설마”하면서 정부의 평가과정을 지켜봤던 이들은 ‘백지화’가 가시화되자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남지역은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데다가 대부분 지역의 단체장과 국회의원을 한나라당에서 보유하고 있어 얼마 전 ‘과학비즈니스벨트’ 파동 때보다 훨씬 더 큰 민심이반이 우려되고 있다.

‘밀양 신공항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대구지역 의원들은 28일 모임을 갖고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 움직임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유승민 대구시당 위원장과 홍사덕, 이한구 의원 등 중진급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이날 모임 직후 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백지화가) 사실이라면 정부 스스로 대국민 사기극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통령의 대선공약일 뿐 아니라 취임 후 3년간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확정, 추진해온 동남권 신공항을 임기말에 백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백지화 발언’을 한 청와대 관계자를 반드시 색출해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이날 오전 대구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서 보도되는 신공항 백지화론이 사실이라면 정부 평가단에서 채점도 하기전에 합격, 불합격을 논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김 시장은 “정부는 이 사업이 영남권의 오랜 숙원이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만약 (언론을 통해) 알려진대로 결론이 난다면 그것은 사전에 각본이 있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신공항 무산은 정부와 정치권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책임도 정부가 져야 한다”며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지방의 거센 반발과 엄청난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밀양에 지역구를 가진 조해진 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신공항 백지화는 정부가 해서는 안될 최악의 선택”이라며 “평가단의 채점도 이뤄지기 전에 정부 관계자가 ‘신공항 백지화, 김해공항 확장’으로 방침이 정해진 거처럼 말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부산 가덕도를 신공항 유치지역으로 밀고있는 이들도 ‘뿔’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이들은 정부가 신공항 건설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해공항 확장은 신공항 건설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맡고있는 김정훈 의원은 이날 “동남권 신공항은 애초에 없는 공항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김해공항의 확정 이전 필요성 때문에 나온 이야기”라며 “김해공항 확장은 신공항과는 별개로 정부가 당연히 해줘야 하는데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15~20년 걸리는 확장사업을 하는 대신 가덕도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해공항은 확장을 하더라도 주변 산이나 여러 가지 소음문제 등으로 인해 24시간 운항할 수 있는 안전한 공항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최선을 다해 가덕도 해안에 (신공항이) 유치되도록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백지화로 결론날 경우) 시민들과 함께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반발이 이어지자 청와대는 은근슬쩍 책임을 미루는 분위기다. 김희정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결정은 국토해양부 입지평가위원회에서 하는 것”이라며 “동남권 신공항은 아직 심사중인 사안으로 관계부처에서 심사가 끝나면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신공항 건설계획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인데다가 이번 ‘백지화 소문’도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결코 이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이번 ‘신공항 백지화’가 이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 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30일 오후로 예정된 신공항 입지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백지화’를 확정지을 것인지 여부에 정가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라디오21 제공>

하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