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에서의 꿈과 같은 경험
-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홀로의 방문
음악은 일종의 에스페란토어이다.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다. 과거에 음악가들은 연주여행을 즐겨했다고 한다. 요즘은 어렵지만. 비발디는 여행지인 비엔나에서 죽었다. 헨델과 하이든의 시절 사람들은 불어와 이태리어로 서로 소통했다. 오늘날 공용어는 영어이며, 가끔 독일어를 사용한다. 오늘날 유럽 연주홀이나 오페라하우스들은 여러 국가 출신의 단원들로 채워져 있다.
한국 출신의 성악 신동들과 피아니스트들이 각종 콩쿠르와 음대에 몰려들고 있다. 독일 극장들은 Kim, Park 혹은 Soon 이라는 이름의 한국인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도대체 이들이 갑자기 어디서 온 걸까?
그들은 부산, 서울 혹은 통영 출신이다. 통영이 위치한 한국의 남해안, “수천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한려 해상 국립공원”에서는 달콤하게 울리는, 그래서 몇 개의 자음조차도 아주 음악적으로 들리는 말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조용한 갈매기 울음소리, 휴식시간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함께 뒤섞이는 곳이다.
2014년 통영에 문을 연 연주홀은 갈매기 날개 형태로 만들어졌다. 둥글게 공간을 감싸는 이중 천장과 1300석의 좌석이 설치됐다. 이곳은 한국에서 4번째로 큰 연주회장이다. 한국인 스스로도 놀랄 굉장한 유토피아, 미래를 향한 선택이다.
일본,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유럽음악은 노화되고, 석화된 엘리트 집단의 징표가 아니라, 젊음, 경제적 부흥, 특권, 호화스러움, 다이나믹의 징표로 기능한다. 21세기 초 처음 클래식 음악축제가 통영에서 열렸을 때, 기쁨에 들뜬 한 비평가는 굴잡기와 배만들기 밖에 없던 14만 인구의 작은 도시가 “한국의 잘츠부르크"가 될 것이라고 썼던 적이 있다. 약간의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진심어린 평이었다.
통영은 한국 작곡가 윤이상이 태어난 곳이다. 윤이상은 평생을 독일에서 보내야했고, 독일 국적을 얻었다. 한국에서 간첩으로 의심받고 체포된 적이 있다. 윤이상은 서구식 형식에 한국식 사고를 독창적으로 연결시켰다. 통영에서는 그에게 헌정된 박물관과 거리이름을 만날 수 있다.
통영 연주홀은 최고의 음향효과를 내기 위해 고급목재를 소재로 만들어 졌으며, 해안가 쪽을 향한 배치와 독특한 지붕 구조 때문에 장 누벨이 설계한 스위스 루체른의 KKL 연주홀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잘츠부르크와는 한 가지 사실을 공유한다. 연주홀 방문객이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 아니라 서울, 도쿄, 홍콩 등 외지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통영국제음악제 대표인 플로리안 리임(Florian Riem)은 어린이 연주회를 구상했다. 어린이들을 일방적으로 이끄는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예술가들에게 관중들뿐만 아니라, 통영 내 약 30여개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주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통영의 어린이들은 완전한 오케스트라 작품을 들을 수 있다.
뮌헨 출신의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Alexander Liebreich)도 이 음악축제의 예술책임자로